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량 해전 (문단 편집) ===# 일본군 저격설과 반박 #=== 전근대 시대의 조악한 명중률의 화승총으로, 야간의 난전 속에서, 호버링하는 헬기보다 더 흔들리는 전근대 시대의 배에 탑승한 상태로 변변한 조준도구도 없이 사람을 온전히 저격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근대 시절 전쟁에서 장수가 눈먼 화살 등에 맞아 전사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일단 전쟁터 자체가 워낙 위험한 곳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에 장수라고 특별히 보호막이라도 있지 않는 한 끊임없이 쏟아지는 화살, 총알, 포탄이 장군만 피해가란 법은 없다. 실제 역사를 봐도 무수한 이름 난 장군들이 전쟁에서 그 명을 달리했다. 특히 전근대 시대에는 지휘관이 직접 최전선에 섰기에 근현대 시대의 전쟁보다 지휘관급의 희생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국시대에 일본군이 조총수들을 경보병처럼 운용, 근거리까지 접근해서 지휘관들을 노리고 쏘는 전술을 자주 했고 육상전에선 조선 장수들이 저격당한 것처럼 보이는 정황들이 기록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노량 해전은 배가 격하게 요동치는 상황에서 전근대적 화기를 발사하는 엄연한 해전이다. 조선 측 명나라 측 일본 측 어디에도 관련 기록은 없다. 하지만 앞뒤 정황만을 따져 볼 때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비록 해상전에서의 저격은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시마즈군은 분명 저격 전술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으며 수하에 정예 총병부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시마즈군에는 가신인 타네가시마씨[* 일본에서 가장 최초로 철포를 접하고 자체 생산한 것으로 유명한 씨족. 히데요시에게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수백 정의 철포를 상납하기도 했다.]가 함께 종군했는데 이들은 당시의 최정예 총병대로 이름높았다. 또한 시마즈군에는 후퇴하며 자살적 후비대를 남겨두어 적장을 저격하는 전법인 '스테가마리'가 존재했는데, 저격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전술이 해상전에서 사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임란 후 벌어지는 세키가하라 전투와 비교해보면, 세키가하라에서는 노량해전과 마찬가지로 시마즈 요시히로를 반드시 살려서 퇴각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여기에서 스테가마리를 통해 도쿠가와측 명장 [[이이 나오마사]]를 저격하여 전사시켰다. 그리고 세키가하라에서는 스테가마리로 투입된 병력이 모두 전사하여 누가 저격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물론 해상전에서 전근대적 화약무기를 가지고는 저격이 거의 불가능[* [[아케치 미츠히데]] 등 빼어난 조총 사격술을 보여준 기록이 있는 장수들도 대부분 정지된 표적을 남들보다 먼 거리에서 정확하게 쏘아 맞춘 것을 뽐낸 정도에 그친다.]하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적인 '''조준사격'''의 경우이며, 전근대적인 일제사격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이순신과 비견되는 영국의 넬슨 역시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군 전열함의 마스트에 있던 머스켓 사수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바가 있다. 이들이 가장 고가치 표적인 대장선의 장대를 향하여 집중사격을 가했다면 피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관련된 사료가 없는 이상 증명이 불가능한 상상의 영역이지만, '''퇴각전에서의 적장에 대한 기습적 저격 전술을 즐겨 사용했고, 정예 저격수 집단이 종군했던''' 시마즈군과 정면대결한 전투에서 하필 추격전을 벌이던 충무공이 전사했다는 것은 분명히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